韓國 山城 探訪

화성시 태봉산성~서봉산~서거정 묘역 탐방...남양만~아산만 바닷길 수로 당은포(唐恩浦)의 요충지

吾心竹--오심죽-- 2013. 3. 4. 14:00

< 화성시 태봉산성~서봉산~서거정 묘역 탐방...남양만~아산만 바닷길 수로 당은포(唐恩浦)의 요충지 >

 

* 태봉산성(해발 223m, 테뫼식 삭토법, 둘레 약 800m)

 

위치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마하리 산 9 ,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관항리 산 28-19

 

태봉산성은 동서로 아산만 수계 황구지천과 남양만 수계 발안천이 분기하며 내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교량처럼 이를 방어하기 위한 산성으로 이해된다. 동쪽에 아산만으로 흐르는 황구지천을 사이에 두고 병점 독산성이 수문장처럼 있다. 서쪽에 건달산과 화성방조제(화옹방조제)가 있으며 남쪽에 서봉산 보루 추정지와 소근산성(초록산)과 길성리토성 자미성, 용성, 북쪽에 노루고개와 수원시가 자리잡고 있다.

 

태봉산성은 해발 223m의 테뫼식산성으로 삭토법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며 약 4m정도 폭으로 산둘레를 운동장 트랙처럼 연결하며 험준한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였으며 전체 둘레는 약 800m정도이다. 정상 장대지 추정지에는 기와편이 많이 있으며 낙엽이 많이 쌓여 기타 토기편의 고고학 유물의 수습은 못하였다. 길에서 만난 동네 촌로에게 마하리 백제고분군에 대해서 물으니 잘 알지 못하며 예전 봉담읍(峰潭邑) 마하리(馬霞里)의 원래 동네이름 자연지명은 <말 무덤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태봉산과 서봉산을 잇는 정남면 백리(栢里)의 자연지명은 잣골=성(城)+골(谷)으로 잣(城)이 잣(栢)으로 바꿔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태봉산 남쪽에 봉담읍 마하리에서 KTX고속전철이 지나며 한성백제시기의 마하리 백제고분군(서기 200~400년 추정)이 발견되었다. 성벽 바깥 경사면에서 연질 타날문토기가 채집되었다고 전하며, 마하리를 기준으로 남쪽으로 백제초도 위례성이라 전하는 천안시 직산읍이 약 40km, 북으로 서울시 풍납토성이 약 40km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아산만 수계 황구지천과 남양만 수계 발안천 상류로 신라의 대중국 무역항 남양 당은포(唐恩浦)의 길목을 지키는 산성으로 이해되며, 건달산을 중심축으로  동서남북 좌우 타원형의 C자형이며 수구는 발안저수지가 있는 남쪽이다. 봉담읍과 팔탄면의 자연지형이 천연 외성의 역할을 하는 천험요새이며, 예전 마한~백제시대부터 해상교역의 중요성이 있는 이곳에 지금 현재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가 위치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 서봉산에서 본 화성시 봉담읍 마하리, 당하리, 왕림리~팔탄면 해병대사령부~건달산 // 

 

* 서봉산 249m...// 

 

 

 

 

* 1872년 수원부 지도...규장각...수원, 화성, 평택 부근도 //  

 

 

 

* 서봉산 서봉정...화성시 봉담읍~정남면 // 

 

 

 

 

* 서봉산 정상에서 수습되는 기왓장 //

 

 

 

 

 

 

 

* 멀리 평택 소사벌판이 시원히 조망된다...날씨이 쾌청하면  천안시 금북정맥 위례산성~성거산도 잘 보인다...// 

 

 

 

* 서봉산 정상에서 본 건달산, 봉담저수지 // 

 

* 서봉산 쉰길바위 유래 // 

 

 

 

 

 

 

 

 

 

 

 

* 봉담장례식장 //

 

 

 

* 서쪽으로 화옹방조제...화성방조제 //

 

* 멀리 안양, 산본의 수리산 // 

 

* 안양 관악산 //

 

 

 

 

 

 

 

 

 

 

 

* 서봉산에서 본 북쪽의 태봉산성과 마하리 부근 // 

 

 

 

 

* 화성 태봉산성 전경// 

 

 

 

 

 

* 화성, 봉담읍 마하리 백제고분군 근처에서 본 태봉산성 전경 // 

 

 

 

* 화성 태봉산 정상 // 

 

 

 

 

* 화성시, 태봉산성 기와편 //

 

 

 

 

 

 

 

 

 

* 화성, 태봉산성 성벽...테뫼식, 삭토법...//

 

 

 

 

* 태봉산성 내부...//

 

* 태봉산성 남문지 //

 

 

 

 

 

* 화성 태봉산성에서 본 동탄신도시 빌딩숲 //

 

* 태봉산성에서 본 독산성 세마대...황구지천의 수구를 동서로 지킨다 // 

 

 

* 태봉산성 동벽// 

 

 

 

 

 

 

 

 

* 화성 태봉산성 동북 입구 // 

 

* 태봉산성 성벽은 산정까지 이어진다 // 

 

 

 

 

 

 

 

 

 

 

 

* 태봉산성, 봉담읍 당하리, 마하리...남쪽으로 서봉산이 보인다 //

 

 

* 봉담읍 마하리 백제고분 입구 // 

 

 

 

 

 

* 사가정 서거정 선생 묘역 입구...전성문(展省門)...

...화성시 봉담읍 왕림휴게소 건너편에 있다...노루고개 남록 //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북길 17번지...서거정 묘역 //

 

 

 

* 서거정 []...문충공 서거정 묘소...6대왕 46년간 재직 // 

 1420(세종 2)~ 1488(성종 19)...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조선 초기 문신학자. 본관 달성(), 자는 강중(), 사가()이다.

권근() 외손자, 1444(세종 26) 식년 문과 급제하고, 1451(문종 1) 사가독서() 집현전 박사 거쳐 1457(세조 3) 문신 정시() 장원, 공조참 지냈다. 육조 판서 두루 지냈고, 1470(성종 1) 좌찬성() 이르렀다. 문풍() 일으키는 공헌 했으며경국대전()》, 《동국여지승람(輿)》, 《동문선()》, 《동국통감()》 수많은 편찬 사업 참여했다. 또한 문장 글씨 능하였으며, 뛰어난 문학 저술 남겼다.

 

 

* 조선 숭정대부 좌찬성 달성군 시 문충 사가 서공 거정묘...정경부인 선산김씨 //

 

 

 

 

 

 

 

 

내가 사명을 받들고 영남(嶺南)에 갈 적에 직산(稷山)을 지나게 되었다. 직산의 객관(客館) 동북쪽에 한 누각이 있기에 올라가 잠깐 쉬면서 주인에게 “이 누각의 이름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으나, 주인이 알지 못하므로, 좌우(左右)에 물으니, 고을 사람이 ‘제원(濟源)’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은 손들은 제원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거정(居正)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고을은 백제의 옛 도읍이니, 이 누각을 제원이라 한 것은 바로 백제의 근원이 여기에서 시작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대체로 백제의 시조 온조(溫祚)란 분은 본래 고구려 동명왕(東明王) 주몽(朱蒙)의 아들로, 난을 피하여 남쪽으로 도망했던 것인데, 사서(史書)에 이르기를 “온조가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살펴보아 하남의 위례성에 도읍을 했으니, 세상에서 이곳을 직산이라 한다.[溫祚登負兒岳 相其可居之地 而都于河南之慰禮城 世傳爲稷山]”라고 하였다. 그래서 거정은 항상, 부아악은 여기서 200리나 떨어진 곳인데 어찌 그곳을 살 만한 곳이라고 여길 수 있었겠느냐고 생각했었다. 또 이른바 하남(河南)의 하(河)는 어느 물을 가리킨 것일까? 거정이 이곳을 지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갈 길이 바빠서 한 번도 들어가 볼 겨를이 없었다. 다만 바라보건대, 지세(地勢)가 편협해서 웅장한 기상이 없어 도읍을 세울 만한 곳이 아니기에 마음속으로 의심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에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를 편찬하면서 여러 가지 서책을 상고해 보니, 직산이 백제의 처음 도읍지였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온조왕(溫祚王) 이후에 직산으로부터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도읍을 옮겼으니 이곳이 바로 지금의 광주(廣州)이고, 또 뒤에 북한산성(北漢山城)으로 도읍을 옮겼으니 이곳이 바로 지금의 한도(漢都)이며, 또 뒤에 금강(錦江)으로 옮겼으니 이곳이 바로 지금의 공주(公州)이고, 또 뒤에 사자하(泗泚河)로 옮겼으니 이곳이 바로 지금의 부여(扶餘)인 것이다.

 

백제는 한 성제(漢成帝) 때부터 시작하여 당 고종(唐高宗) 때를 지나도록 시종 500여 년을 지탱해 온 나라로서, 특히 온조왕은 이리저리 떠돌아 파천(播遷)하는 중에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설치하여 신라, 고구려와 더불어 솥발처럼 삼국의 형세를 이루었으니, 호걸스럽고 위대한 인물이 아니면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후대(後代)에 이르러서는 누차 그 나라를 옮겨 다니면서 강함을 믿고 전쟁하기를 좋아하여 순치보거(脣齒輔車)의 형세를 알지 못하고 강한 적과 전쟁을 하다가 국세(國勢)가 날로 쭈그러들었고, 게다가 의자왕(義慈王)은 혼암하고 음탕하여 아첨하는 자의 말만 받아들이고, 성충(成忠)의 간하는 말은 거절했다가, 당(唐)나라 군대가 바다를 건너자마자 나라가 곧 멸망하였으니, 아, 슬프다. 이에 이 누각에 오르니, 감개(感慨)함을 감당할 수 없어 시로써 위문하노라.


백제의 옛터에 잡초만 절로 우거졌어라 / 百濟遺墟草自平
내 와서 보니 감개하여 마음이 상하누나 / 我來感慨一傷情
오룡이 천안부에서 전쟁을 끝내고 나니 / 五龍爭罷天安府
쌍봉이 위례성에서 슬피 울어 마치었네
/ 雙鳳鳴殘慰禮城
시조 사당 깊은 곳엔 단풍나무 어우러졌고 / 始祖祠深紅樹合
성거산이 둘러싼 곳엔 푸른 구름 비꼈구나 / 聖居山擁碧雲橫
누에 오르니 추풍에 슬픈 생각 하 많은데 / 登樓多少秋風思
어드메서 부는지 철적 소리가 들려오누나 / 何處吹殘鐵笛聲

 

    < 서거정 직산 제원루 시...한국고전번역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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