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 山城 探訪

직산 부소산 위례성...좌성산성(左城(聖)山城, 서운산) 탕흉대(蕩胸臺) 탐방

吾心竹--오심죽-- 2011. 9. 12. 17:00

* 직산현 좌성산(左城山, 左聖山)...좌성산성, 일명 서운산성(瑞雲山城)... 탕흉대(蕩胸臺)

 

 

천안시 입장~북면의 금북정맥 백제초도의 진산인 부소산(扶蘇山, 459.1m)과

부소산 위례성(위례산성, 523m)을 중심으로

우성산(右城山, 右聖山...성거산-聖居山, 579m), 성거산성의 대칭으로

좌성산(左城山, 左聖山...서운산-瑞雲山, 547m), 서운산성이 위례성의 익성(翼城)으로 있다.

 

부소산 남서쪽으로 부수문이고개(부소령-扶蘇嶺, 扶蘇峙)가 있으며,

부소산 북동쪽으로 협탄령(脇呑嶺, 렵단령, 렵둔령>엽돈재,렵돈치,엽둔령>엽전재...음운변화)이 있다.

 

부소산은 백제시조 온조왕이 건도한 직산 하남위례성 백제초도 진산이며,

부여 부소산 낙화암은 백제 마지막 진산이다.

 

 

협탄령(엽전재) 아래에는 진천 백곡의 대문리(大門里)가 있다.

대문(大門)...백가제해 백제국의 다물계통 언어(多勿系統 言語)이며

백제초기 위례성의 동문(東門)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협탄령...목천의 목협만치 세력을 삼켰다는 의미가 있다.

김무력~김서현~김유신장군의 신라세력이 백제의 강역을 공취하여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규장각 고지도에는 안성~진천의 배티(梨峙)고개의 이름은

대문령(大門嶺), 천문령(天門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진천 도당산성~안성 내혜홀~진위, 평택의 당항성(옹포-독개나루, 평택시 청북면)을 잇던

협탄령과 배티고개...천문령, 대문령이 고대 대당, 대중국교역로 당항성로의 중심임을 증빙한다.

 

 

탕흉(蕩胸)이란?

가슴이 시원하다,

가슴이 후련하다,

가슴속 답답함을 쓸어버린다는 뜻으로

이곳에 올라서면 천안~직산~성환~평택~안성의 소사벌과

서해 아산만 당항성(달기목성, 닭모가지성, 鷄項城)

아산 인주 미추홀(밀두리-밀물의 머리...큰머리성>大豆(頭)山城>薪城>靈仁山城)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미추홀이 지금은 인천광역시 문학산성이라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엔 기록되었지만

이는 역사적 중대한 잘못이라 생각된다.

그것을 푸는 실마리는 순우릿말 지명 유래에 있다.

 

탕흉이란 천안시 성환읍 월봉산(月峯山) 아래에 있었던

직산현 성환역 찰방의 누각의 이름이 척수루(滌愁樓-근심 걱정을 씻어낸다-창건연대 미상)이며,

고려 태조 왕건이 936년 음력 8월말~9월1일 사이에 삼국통일...

후백제 신검을 물리치기 위해 일리천 전투(선산)으로 가기전 직산현을 지나며

자신이 출생한 황해도 개성(송악) 성거산의 이름과 똑같은 쌍둥이 지명을

천안의 城山, 聖山에 성거산(聖居山)이란 새로운 지명을 직산현 수헐원에서 붙였다. (936년9월1일 추정)

 

또한 왕건이 천안도독부 왕자산(王字山-오룡쟁주형) 고정(鼓庭-군사 주둔지)과

일리천(善山)으로 가기전 직산현 수헐원(愁歇院-근심을 쉰다...시름세)에서

근심을 털어내며 이같은 성거산과 수헐원(시름세)란 지명이 탄생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천안도독부 왕자산(王字山)에 성불사(成佛寺-천안시 동남구 안서동)를 도선국사가 창건한다.

또한 고려 태조의 사당인 태조묘(太祖廟) 역시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 천안 진산 왕자산(王字山) 아래에 있었다.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에 의거 천안도독부에 중요한 사찰이 몇개 더 세워진다.

 

고려 왕건에게 최후까지 항전한 우마상돈장씨...

백제유민인 목천 오축성(五畜姓-牛,馬,象,豚,獐)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항거한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지역(독립기념관)이며,

백제 온조왕의 백제 첫도읍지 하남위례성의 진산(鎭산)이며,

서해바다와 중부내륙을 잇는 고대 육상교통로의 중심에

부소산 구룡사(九龍寺-추정)를 창건한다.

 

부소산(扶蘇山-459.1m) 구룡사 보협인탑(국보209호-천안시 동남구 북면 대평리 탑골-동국대박물관 소장)은

950~960년경(10세기 후반기) 천안지역에 맨처음 세우고,

 

천안 직산현의 조산(祖山)이며, 서해바다~청주지역 고대 육상교통로의 중심에 다시

성거산 아래 천흥사(天興寺)를 1010년(현종 원년) 창건 추정함.

...성거산 천흥사 동종(국보280호-국립박물관)

 

또한 성환~평택 홍경들판(소사벌) 갈대 우거진 들판 중심이며

삼남대로에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碣碑-국보 7호, 1026년 건립-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리...1번 국도변)와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을 1021년(현종12년) 건립한다.

 

절이 있는 곳에 인적이 끊겨 도적이 많았으므로 우환을 없애기 위하여 승려를 불러 불법을 전하는 한편,

여행자 보호 및 편의를 위하여 형긍(逈兢)이 왕명을 받들어 절을 짓게 되었다 한다.

홍경사는 1016년에 기공하여 6년 여에 걸친 공사 끝에 1021년 당전(堂殿) 등 200여 칸을 짓고,

또 절 서쪽에 객관(客館) 80칸을 세워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이라 하고

숙소와 양식 및 말먹이 등을 마련하여 지나는 행인들에게 제공하였다 한다.

이는 고려 왕실이 후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태조 왕건의 위대한 업적을

천안지방에 그 의미를 부여한다는 성격이 강하다.

 

이는 천안 직산~안성이 삼국시대 고구려~신라~백제의 각축장이며

그 접경지가 이곳임을 간접적으로 증빙하는 방증사료이다.

 

탕흉(蕩胸)의 어원은 당나라 시인 두보가

중국의 황제들이 올랐다는 산동성 태산에 올라가서 읊은 망악(望岳)이란 싯귀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으며,

 

탕흉이란 지명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장수왕의 한성침공...남진정책과,

신라의 한강유역 점령기, 당항성로 확보

다물국 백제 위례성의 건도 역사를 풀어 줄 중요한 지명중의 하나이다.

 

좌성산성, 서운산 탕흉대 올라서면,

그곳을 점령했던, 그곳을 통치했던,

지나가버린 과거 역사속의 주체들의

거친 숨소리를 느낄 수 있고

드넓은 소사벌판과 망망대해 서해바다를 탕흉대에서

막힘없이 조망했을 古人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만날 수 있다.

 

좌성산 탕흉대에 오르면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태산(泰山)에 올라 읊은 망악(望岳)의 싯구처럼

가슴 답답함을 털어내고, 가슴속 응어리를 후련히 날려 보내고

층층히 피어오르는 구름을 발아래 굽어 볼 수 있다.

 

탕흉대의 좌성산성(일명, 서운산성)에서

백제시대 출토 유물들이 발견됨으로써

고고학적으로 이런 역사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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