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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십일시장

吾心竹--오심죽-- 2010. 1. 30. 18:10
진도 십일시장| ☞여행추천명소
동문 조회 27 | 09.09.05 07:46 http://cafe.daum.net/GS75/5ODt/1746

▲ 발포 앞 바다에서 방금 잡아온 참숭어. “시방은 많아도 늦게 오믄 떨어져불어요∼.”
ⓒ 김창헌 기자

ⓒ 김창헌 기자

5일마다 열리는 닷새장이 아니라 4일, 10일로 끝나는 날이 장날이다. 31일까지 들어 있는 달엔  30일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선다.
임회면 소재지 십일시리에 서는 ‘십일시장’이다. ‘임회장’이라고도 한다.

“진달래 피믄 청어잽이 나가고, 곡우 넘으믄 조구떼 울고”
석교천이 흐르는 십일시교를 건너며 장은 시작된다. 오른쪽 길목으로 들면 구장터이다. 예전에는 석교천 따라 장이 서고 쇠전이 벌어졌다. 옛 장옥은 식당 등 상가로 바뀌었다. 그러나 장날이 되면 장터 가는 길을 안내라도 하려는 듯 물건을 내놓고 판다. 구장터 구부러진 길 따라 들어가면 사람들 웅성대는 전(廛)을 만나게 된다. 200여 년 동안 이어온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원래는 쇠전 자리다. 쇠전이 없어지며 새 장옥을 짓고 장터를 마련했다.

▲ “쫌 있어야 새비(새우) 암꽃게 나오고 괴기(고기)가 흥성흥성하
제.”
ⓒ 김창헌 기자

▲ 연하디 연한 ‘꼬시록’. 초고추장, 된장에 버무려 먹으면 맛있다.
ⓒ 김창헌 기자

진도에서 읍내장 버금가는 장터가 십일시장이다. 진도 서남부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상조도 하조도 각흘도 관매도 가사도 등 조도군도 섬사람들이 모아들었던 장이다. 풍부한 물산에 장은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찾아간 장터는 붐비지 않았다. 진도는 시방 바쁘다. 농사가 한창이다.
“떡배추(봄동 배추), 대파 뽑느라 장 나올 시간 있간디. 한가해야 장에 나오제.”
그러고 보니 나물이나 채소를 가지고 나온 할머니들이 없다. 어느 장이나 봄나물로 넘쳐날 때인데 말이다.  하지만 한 촌로는 ‘모르는 소리 하고 있다’고 옆 사람을 몰아친다.

“배추 한참 뽑아야 헌디 손놓고 있는 사람이 많애. 배추를 사가들 않은께. 엊그제께 군에서 폐기처분해야 살 길이라고 결정을 내렸어. 여그 임회도 배추 9ha 대파 76ha 엎어라고 지시가 내려왔고. 시방 이런 판국이여. 털레털레 장 나올 기분이 아녀.”

장은 진도의 현재 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아직 바다가 풍성해질 때가 아니라는 점도 장에 사람이 없는 이유라 한다.
“쫌 있어야 새비(새우) 암꽃게 나오고 괴기(고기)가 흥성흥성하제. 놀아도 물갓에서 놀아야 배 뜨뜻하다고 않던가. 괴기 나와야 장이 벌어지제. 진달래 펴야 청어잽이 나가고 사월 곡우 넘어야 조구(조기)떼 울고. 아직 일러. 3월 하순은 돼야 장구경 헐 만허제.”

▲ 독팍(돌) 밑에 사는 ‘청동기’
ⓒ 김창헌 기자

이맘 때, 진도 왔으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간재미’.
ⓒ 김창헌 기자

“참숭어는 시한에 맛나고, 개숭애는 보리 필 때가 맛나고”

약초전 할머니는 약초 이름 묻자, 노래를 한다.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 승화시라∼.”
‘노금방초’라는 약초다. ‘녹음방초’와 내는 소리가 비슷해 불렀던 것. “어쩐 사람은 ‘냉초’라고 하고 ‘노루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산에 사철 요래 갖고 있어. 시한에도 퍼래. 산 짚은(깊은) 데서 암(아무) 때라도 캔디 시방 감초 쪼까(조금) 넣고 대려(다려) 묵어야 약값 톡톡히 봐. 요것은 꽃 피기 전에 약효가 쎄거든.”

잘 봐두란다. 눈에 찍어 놓으면 나쁠 것 없다. “산에 가갖고 뱀에 물리믄 요것 찍어 볼르고(바르고), 놀러 가 갖고 독충에 쐬이믄 볼르고, 칼에 비어(베) 갖고 피 나믄 볼르고.”
장 길목에는 신발 옷 이불 잡화 장사들이 하나씩 있다. 그 뒤로 반찬 과일 어포 채소가 늘어져 있다. 장옥은 대부분 비어 있고 주차장으로 만들어 놓은 공터에 물건을 내놓았다.

맨 뒤쪽에 어물전이 싱싱하다. 대야에 물건 가져와 고만고만하게 좌판을 폈다. 굴 게 바닷말 등 직접 바닷가에서 잡은 것을 파는 이도 있지만 대게 서망 어판장에서 떼다 판다. 작년 여름, 가을에는 갑오징어도 아닌 동해에서 잡히는 오징어가 장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서망 어판장에 오징어 파시가 섰기 때문이다.

▲ 간재미가 팔리지 않았다. 파장했지만 자리를 뜰 수 없다.
ⓒ 김창헌 기자

ⓒ 김창헌 기자

“별일이제, 동해서 잡혀야 할 것이 흑산도 앞 바다에 깔려 불었는께. 부산 거제 경상도배들이 서망에 꽉 찼었어. 그때는 우리도 오징어장시 돼 불었제.”
장터 끄트머리에 뭔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몰린다. “몰이해 불었네.” “바다가 전세 내 불었네.” 포장 하나 깔아 놓고 숭어를 ‘부어’ 놓았다. 고군면 벌포리 곽귀엽(62)씨가 정치망으로 방금 잡아온 ‘숭어떼’. 참숭어다. 1마리에 2천 원, 큰 것은 2·3마리에 1만 원.

“섣달 그믐달 개밥 퍼주듯이 줘 불란께. 시방이 제일 철인게. 이 시기 지나믄 묵고 잡아도(싶어도) 못 묵은께, 사쇼∼.”
쳐다만 보다 5천 원어치, 1만 원어치 주라고 한다. “봉지 터져 불겄는디” 하는 말이 나온다. 큰 놈 골라줘도 “무서운께 작은 놈 줘” 하는 사람이 있다.

한 할머니가 “거머리 같으믄 몇 마리 사겄는디…” 한다. ‘거머리’는 개숭어, 즉 가숭어를 말한다. ‘시랭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참숭애는 시방 시한에 맛나고, 개숭애는 보리 필 때가 맛난디, 뭔 소리 한다요.”
“인자 봄 돌아와 불었는게 하는 소리제. 거머리가 (맛이) 더 낫겄다고.”

숭어 구경하던 사람들 회 한 점씩 맛봤다. 곽씨가 ‘맛있나, 맛없나’ 보자고, 칼 도마 빌려다 회를 떴다. ‘겨울 숭어 앉았다 나간 자리 뻘만 훔쳐먹어도 달디달다’ 했다. 아직은 ‘시한’으로 봐 주기로 했다. 쫄깃쫄깃, 달디달다. 

숭어는 조금 물때에 잘 잡힌다고 한다. 바람 불면 더 잡힌다.
“회 떠 묵어야 질로 맛있어 뼈다구는 찌개 해 묵고. 잘 묵은 사람은 등어리 타 갖고 꼬돌꼬돌 말려 갖고 양념해서 쪄 묵고 그려.”
참숭어와 개숭어 구별은 정말 간단하다. “눈에 금테 두른 놈은 참숭어, 썬글라스 낀 놈은 개숭어.” 참숭어 눈은 노랗고 개숭어 눈은 검다.

▲ “이것 묵다 이빨 빠지믄 어쩌려고 그려”. “입에 물고만 있어. 장
에 와갖고 갱엿 하나는 물고 있어야제.”
ⓒ 김창헌 기자

▲ 곧 있으면 모내기철. 물장화는 필수.
ⓒ 김창헌 기자

 “진도까정 와갖고 간재미 안 묵고 가믄 바보제”

어물전에는 ‘시방’ 먹어야 할 게 또 하나 있다. 상인들마다 쟁반에 올려놓고 판다. ‘여름에는 뻐셔저서 맛없다’는 간재미. 홍어와 비슷하지만 크기가 훨씬 작다. 코가 있는 부분이 홍어와 많이 다르다. 홍어는 뾰족하게 앞으로 나와있지만 간재미는 앞이 둥그스름하다. 굴포리 김만엽(66)씨는 “진도까정 와 갖고 간재미 안 묵고 가믄 바보제. 시방이 맛 돌 때여. 술 안주 밥 안주로 그만이고 보리싹에 간재미 내장 넣고 된장국 낄이믄(끓이면) 며칠은 딴 것 못 묵네”라고 말한다.

그런데 잘 나가야 할 간재미가 안 나간다. “옛날에는 둘에 만원씩 폴고 했는디 6마리 7마리 준다고 해도 안 사가네. 전에는 결혼허믄 집에서 장만했는께 다 사갔어. 근디 시방은 식당에서 해 분께. 나주 광주 같은 디는 홍어 무친디 여그는 간재미 몰강몰강 무쳐서 잔치 했제. 근께 비쌌제. ”

‘못 폰 고기는 집에서 묵기도 싫다.’ 어물전 상인들 간재미 한 마리씩 걷어 술 한 잔씩 걸치기로 했다. 여기에 진도로 여행 온 한 아저씨가 장터 구경나왔다가 휩쓸렸다. 간재미 만 원어치 사 장바닥에서 같이 회 쳐 먹기로 했다. 장터 바로 앞에 사는 이사동(66)씨가 바람을 잡았다. “내가 된장 초장 다 무쳐서 고추랑 술이랑 내 갖고 올란게 지비가 간재비 사쇼.”

▲ “서울 사람들 이라고 묵으믄 기절초풍하네. 서울 안 간다고 떼 쓰제.” 장바닥에 벌어진 작은
잔치. 맛도 최고, 기분도 최고다.
ⓒ 김창헌 기자

▲ '십일시교'
ⓒ 김창헌 기자

어물전 순옥이엄마가 칼을 잡았다. 신문지로 간재미를 싹싹 문지른다. “곱(겉에 있는 끈적끈적한 액체)이 있으믄 비린내 난게.” 막걸리가 없어 아쉽단다. 먹기 전에 막걸리로 씻어내야 쫄깃쫄깃하다. 순옥이엄마는 “회는 칼로 묵는 거여. 칼잽이가 맛을 내는 거여” 한다.

“고기는 싱싱해야 맛있고, 아무리 맛난 고기도 껍데기 얄팍하게 잘 썰어야 맛있고. 썰 때 묵어야 맛있고. 자, 묵더라고.” 
둥그렇게 앉아 먹는다. 소주 돈다. “술 못 묵는 사람 이 자리서 배워 불어, 안주 좋은께.” “서울 사람들 이라고 묵으믄 기절초풍하네. 서울 안 간다고 떼 쓰제.” 노랫가락 나온다. “춘자여 보고 싶구나 내사랑 춘자야∼.”

굴포리 박순기(67)씨가 초장이 맛있다고 고동 잡으러 갔다가 고동 없어 대신 따온 ‘꼬시록’(꼬시래기)를 가져와 버무린다.
“요것도 시방 묵을 때여. 연허디 연허잖애.”
“꼬시록도 모르네. 우뭇가사리에 꼬시록 넣야 ‘우무’가 돼. 우리 웃세대는 꼬시록으로 풀 맨들어 갖고 무명베 옷을 해 입었어. 여름에 뻐셔지믄 뜯어 갖고 민물에 씻으믄 하애져. 물 붓고 낄이믄 풀이 나와.”    

▲ 대야에 기어다니는 게가 신기한 아이. 어물전 할머니가 한 마리
잡아 내밀어주지만 무섭다고 도망치고 만다. 그러나 만지고 싶은
욕심은 사라지지 않아 몇 번의 시도 끝에 손으로 잡았다.
ⓒ 김창헌 기자

조도 섬사람들 톳 둔북이 가져와 짚 미영으로 바꿔가고…

“쇠전에선 ‘황소 사쇼’ 소리 고래고래 지르고. 산에서도 들키게(들리게). 도붓장수 보따리에 이고 댕기고 황아장수 잡스런 거 다 걸머지고 댕기고. 돼지새끼도 사서 이고 가고. 그러다 머리에 오줌 싸 불고….”
예전 장날 모습을 읊는 박용산(78) 할머니. 옛날에는 서숙 쌀 보리 콩 닭 계란 여자들이 이어다가 다 장에서 팔았단다.

장이 있는 십일시리는 간척이 되기 전 갱물(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다. 바닷가 마을 굴포 중림 서망 팽목 탑리에서 해산물이 몰렸지만 이곳에서 나는 양도 만만치 않았다. 바지락이 이름나 있었다.

“소포 원을 나 젊어서 막았어. 앵무리로 장구포로 개웅(갯벌)이 얼매나 컸는디. 반지락(바지락) 많이 난께 물 나믄 지산 사람들 임회 사람들 삽 들고 얼멍채 들고 갱번으로 가. 삽질해 갖고 얼멍채에 넣 갖고 물에다 흔들흔들. 그래갖고 장에다 내고. 꼬막 낙지도 내고.”
무엇보다 십일시장은 조도를 비롯한 섬사람들에게 생필품과 주식인 쌀을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조도는 팽목으로, 가사도는 가학으로 곳배(고깃배) 타고 와 갖고 실어 날랐제. 섬인께 농사가 빌로(별로) 없어. 근께 톳 둔북이(뜸북이) 다발로 묶어 갖고 와서 짚으로 바꿔가고 했어. 초가집이었는께 지붕 얹질라고. 감자 벌이를 잘헌께 감자엿 맨들어 갖고 미영 바꿔 가고. 쌀 폴아 가고. 근께 옛날은 장이 점도록(저물도록) 섰어.”
하지만 이제 십일시장은 12시가 넘어가자마자 장꾼들이 짐을 챙긴다. 오후에는 텅 빈다. 장옥 내 막걸리집만이 다음 장날을 기약하며 육자배기 가락을 이어가고 있다. 

ⓒ 김창헌 기자
진도 십일시장은 왜 4일, 10일에 열릴까?

‘십일시(十日市)’라는 이름은 끝자리가 10일인 날 시장이 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고군면 고성리에는 ‘오일시(五日市)’가 있다. 5일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섰기 때문이다. 현재 오일시 장날은 1일과 5일로 끝나는 날이다.

십일시, 오일시처럼 예전에 진도의 장들은 대체로 10일을 간격으로 열렸다. 장이 생겨난 15세기 중엽에는 한 달에 보통 2회 또는 3회 열리는 보름장 또는 10일 장이었다. 16세기 들어 장이 전국적으로 개설되고 이후 대동법 실시와 동전유통 확대 등으로 외진 곳까지 장이 들어서게 된다. 18세기 이후 상업의 발달로 대부분의 장이 5일마다 서는 오일장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진도를 비롯해 낙안, 운봉, 고산, 해남, 보성 등은 그 변화가 더뎠다. 

십일시장이 생긴 것은 18세기로 추정된다. 문헌에 처음으로 나오는 곳이 1770년 편찬된 한국의 문물제도를 분류·정리한 백과전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이다. 읍내장과 함께 임유장(십일시장)이 기록돼 있다. 2일로 끝나는 날에 읍내장이,  7일로 끝나는 날에 임유장이 섰다고 한다. 십일시장 장날이 언제 10일로 바뀌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읍내장이 2·7일, 5일장으로 자리를 잡으며 경제력에 밀렸던 십일시장이 장날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십일시장 장날이 10일에서 4·10일로 바뀐 것은 주변의 장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진도에는 십일시장 외에 군 소재지에 읍내장(2·7), 의신면에 돈지장(1·6), 조도에 조도장(2·7), 고군면에 오일시장(1·5), 지산면 인지리장(3·8)이 있었다. 5·10일로 잡지 못한 것은 5일로 끝나는 날 서는 오일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십일시 장날인 10일을 그대로 두고 장날을 잡으려면 4일, 9일 중 택해야 하는데 9일은 10일과 하루 차이니 자연스럽게 4일로 끝나는 날을 장날로 택했다.

《진도통계연보》를 보면, 진도 오일장이 1994년에 6개, 2000년도에 5개, 2001년도에 4개로 나와 있다. 읍내장과 십일시장 가까이 있었던 인지리장이 1994년 사라지고 2001년 섬에 섰던 조도장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