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 歷史 探訪-1

직산현 부소산 부소령...백제초도 하남 위례성

吾心竹--오심죽-- 2009. 7. 28. 19:31

<<< 백제초도 위례성--- 부소산 부소령(扶蘇山 扶蘇嶺) >>>

 

● 직산현(稷山縣) 부소산(扶蘇山--459.1m) 유래


위  치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도림리 산21-3번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운용리 산1, 산24번지


옛 직산현의 동쪽과 목천현의 북쪽 경계를 이루던 산이며,

백제시조 온조왕이 마한 목지국의 진왕으로부터 동북 100리 땅을 봉토 받아

백제 첫도읍지 <하남 위례성>을 세운 곳으로 전해진다.

< 직산 백제시대---기원전18~6년, 13년간의 도읍지 >


특히 부소령(扶蘇嶺)은 부소산과 위례산성을 이어주고, 일명 부수문이고개, 부소치(扶蘇峙),부소문치(浮所門峙), 부소령으로 직산현, 목천현의 고지도(서울대 규장각)에 전해진다.

백두대간 금북정맥(호서정맥)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부소산 아래 깊은골(深谷)은 금강이 발원하고,

입장천을 따라 아산만 안성천이 발원하며, 금북정맥(호서정맥) 부소산~서운산~칠장산과

한남정맥 안성~용인~광주의 한성백제의 광주(廣州)로 이어져 용인(龍仁)의 <비류와 온조>가 도읍 정하기 위해

열 명의 신하들과 함께 올랐던 부아산(負兒山)과 이어진다.

서해바다의 어염과 성환, 안성, 평택 소사평(素沙坪) 100리 드넓은 곡창지대를 내륙으로 이어주고,

아산만 최상류에 위치하여 대중국(對中國) 무역의 호서제일관문(湖西第一關門)의 역할을 다한다.

 

<부소산과 위례산성>을 중심으로 <좌측엔 서운산성(瑞雲山城, 左聖山-左城山)> <우측엔 성거산성(聖居山城, 右聖山-右城山)>이 익성(翼城)으로 배치되고, 남쪽으로 목천의 작성산성(鵲城山城), 서북쪽으로 직산의 사산성(蛇山城)이 남북으로 포진하여 천험지리 난득지세의 요충지를 자랑한다.

서해 아산만과 삽교천의 인주면 밀두리(밀머리, 해빈 미추홀)에서도 잘 보인다.


부소산 북쪽능선에 신례산(新禮山), 신례사 터, 한림봉, 고려말 충간공 직산군(忠簡公 稷山君) 백문보(白文寶) 고향인 양대리, 조선시대 민복(閔福)의 묘와 위례산성 아래의 옛날 나라에서 제사 올렸다는 국사봉(國師峯), 남쪽엔 온조대왕이 위례성에 와서 처음에 머물렀다는 깊은골(深谷)과 금강발원지(錦江發源地), 온조왕이 곡식을 쌓아 두었던 곡간리(곡대), 국보 209호 보협인탑이 발견된 대평리 탑골(구룡사 터), 백제때 군대가 주둔했다는 군단이(軍團), 온조왕이 위례성에 도읍할 때 시장이 섰다는 장생이, 위례성 전투에서 죽은 군사의 무덤이 있다는 납안리(納安里)가 있고, 위례산성 아래엔 범이 자주 울었다는 범우래, 우례골, 백제 9명의 시랑이 살았다는 구시랑이골, 시장, 무술을 연마했다는 도장골,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다는 호겨니(虎見里), 진채봉, 금성사(錦城寺)가 있고, 직산엔 마한 목지국 진왕정(辰王井)과 온조왕묘(溫祚王廟) 터, 제원루(濟源樓) 터, 백제 개국공신 하남백(河南伯) 조성(趙成)의 묘, 직산의 진산인 사산성(蛇山城)이 있고, 백제때 나라에서 쓰기 위해 구리로 둘러 만들었다는 우물인 불그머리(赤井) 등의 지명과 유적지가 현존하고 있슴.

 

<<< 오심죽...2009.7.28 >>>

 

 

<<< 국호 : 십제~백제~남부여의 도읍 변천사---백제(BC18~660년) : 678년간 >>>

 

1. 직산 위례성시대 (慰禮城 時代-직산)------BC18 (온조왕 계묘년)~BC6---------(13년)

2. 남한성 백제시대 (南漢城 時代-서울)--BC5 (온조14년 병진년1월)~AD371-------(366년)

3. 북한성 백제시대 (北漢城 時代-서울)-----AD371 (제13대 근초고왕 신미년)~AD 475---(104년)

4. 웅진 백제시대 (熊津 時代-공주)----AD475 (제22대 문주왕 을미년)~AD 538-----(63년)

5. 사비 백제시대 (사비 時代-부여)----AD538(제26대 성왕)~660(의자왕20년)------(123년)

  

 

 

 

 

 

 

  

 

 

 

 

 

 

 

 

 

 

 

 

 

 

 

 

 

 

 

  

 

 

 

 

 

 

 

 

 

 

 

***아산만 고용산에서 본 금북정맥...부소산...좌 서운산...우 성거산의 위용 ///

 

***서해대교...// 

 

 ***위례성을 바라보는 하남백 조성의 묘...백제개국공신...제비단제(濟碑壇齊) //

 

***백제개국공신...하남백 조성의 신도비...직산읍 군동리...//

  

 

***직산현...부소산 부소령...백제초도 위례성...//

 

***부소령에서 본 입장 양대리...//

 

***부소산...신례산에서 본 직산현 부소산(扶蘇山)...//

 

***위례산성에서 내려 본 부소산(중앙)...//

 

***부소산 신례산에서 본 엽전재...엽돈치...금북정맥...//

 

***부소산 한림봉에서 바라 본 위례산성...중앙 앞산이 국사봉...//

 

***위례산성에서 본 직산현 읍치와 진산...사산성...//

 

***위레산성에서 본 아산만과 서해...왼쪽 뾰족한 봉우리는 고용산...//

 

***저 멀리...위례산성에서 본 평택시가지...소사뜰...//

 

 

***좌성산 능선...서운산성...//

 

***서운산성...좌성산...//

 

***우물목에서 본 왼쪽의 성거산성...//

 

***용인 부아산 정상...//

 

***용인대학교와 한산 부아악...한남정맥...//

 

<부소산>


백제어로 <부소모이>였다. <부소>는 솔(松)의 뜻이다. 부여계어로 <부소> <부·>는 <솔>을 뜻하는데, <솔>은 마한어였다. 전기 백제어 지역에서 이 <부소>가 많이 발견된다. 한 예로 부소압(扶蘇押=松嶽=松都)을 들 수 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위례홀(慰禮忽)에 도착하여 먼저 오른 산이 부아악(負兒岳)이었다. 그런데 아(兒)의 고음이 (·)이었으니 부아(負兒)는 당시의 백제어 <부·>를 적은 것이다. 이 <부·>도 <솔>을 뜻한다.

마한어 <솔> 지역에 부여계어 부사(夫斯)가 침투한 것이다.


고구려 건국 수도 졸본의 강은 비류나, 보술수, 송양(沸流那,普述水,松壤)으로 불렸다. <보술→松, 나→水ㆍ壤>의 대응을 나타내므로 <보술>이 松의 뜻임을 알 수 있다. 나(那),라(羅)는 모두 땅(壤·地)을 뜻한다. 고구려와 신라에서 공통으로 사용된 <나>,<라>가 합쳐져 현대의 순 한국어인 ‘나라(國)’가 파생됐다.


보술(普述)은 이후 부사(夫斯), 부소(扶蘇)로 변화하였는데 백제의 첫 번째 수도 위례홀의 뒷산은 ‘부사악(夫斯岳, 負兒岳)’으로 불렸다.

개성(開城)의 옛 이름은 부소압(扶蘇押)이었다. 이후 소나무<솔>의 한자어가 이름에 들어가 ‘송악(松嶽)’이 됐다.


백제는 천도로 인해 위례홀(稷山)→한홀(漢城)→고마(公州)→소부리(扶餘)로 바뀌었다.


<<< 출처...백제어연구... 도수희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