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인수봉에 '한성백제' 제단 있었나?

吾心竹--오심죽-- 2009. 3. 31. 15:21

인수봉에 '한성백제' 제단 있었나


[중앙일보 전익진] 수도권의 중심부인 북한산 인수봉 기슭에서 백제 초기인 한성백제시대(BC 18~AD 475년) 것으로 보이는 기와 조각이 다량으로 발견됐다.

한성백제시대 유물이 한강 이북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어서 한성백제의 영역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인수봉 기슭에 당시 제단 등이 있었을 가능성도 시사한다. 한성백제시대는 백제가 한강 주변 하남위례성을 수도로 삼아 건국한 뒤 고구려의 공격으로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원로 고고학자 최무장(65.전 건국대 박물관장) 박사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과 인접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인수봉 서쪽 기슭에서 지난달 초와 이달 초 세 차례에 걸쳐 지표조사를 벌인 결과 한성백제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기와 조각 100여 점을 발견했다"고 21일 밝혔다.

발견된 기와는 두께 1~2㎝ 짜리 수키와 10여 점과 암키와 90여 점으로 색깔은 회백색.회갈색.적갈색이다. 최 박사는 이 가운데 적갈색의 것은 건물이 불타면서 변색한 것으로 추정했다.

기와 앞면에는 격자문(格字文).사격문(斜格文).평행문(平行文) 등 다양한 문양이 기와마다 서로 다른 굵기와 간격으로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촘촘한 그물 형태의 '평직포문(平織布文)' 무늬가 보인다.

박용진(73.전 공주교육대학장)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 회장은 "이 기와 조각들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성백제시대 성터에서 1976년 채집된 한성백제시대 기와 조각 31점과 기와 앞.뒷면의 문양과 형태.색깔 등에서 거의 일치한다"며 "한성백제 말기인 5세기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형구(61.고고학) 선문대대학원장은 "굵은 줄 형태의 사격 문양을 띤 회갈색 기와 조각 두 점의 경우 80년대 초 (한성백제시대 토성 터인) 서울 풍납토성에서 1㎞ 거리인 가락동 한성백제 추정 건물 유적지에서 출토된 기와 조각과 같은 계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산 정상에서 멀지 않은 인수봉(해발 804m) 기슭 10평 남짓한 평지가 발견지라는 점도 관심거리다.

최 박사는 "이번 발견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1장에 나온 '온조왕(백제 시조)이 한산(漢山:지금의 북한산)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지금의 인수봉)에 올라 가히 살 수 있는 땅을 바라보았다'는 기록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기록을 감안하면 기와 발견지에 한성백제시대의 신성한 제단이나 군사 목적의 망루로 쓰인 기와집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적어도 북한산 주변에 당시 성이나 별궁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과 발굴.연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에 발견된 기와 조각을 실물 또는 사진으로 살펴본 학자 대다수가 한성백제시대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으나 일부는 "삼국시대 신라나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고양=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전익진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ij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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