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捺文 土器

오리모양 토기의 발전

吾心竹--오심죽-- 2010. 9. 2. 14:59

오리모양 토기의 발전

 마한, 진한, 변한의 시대를 거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4국 시대가 전개되는데, 특히 삼한의 토기는 백제 신라 가야의 3국에서 계승발전되었다.
 그 중 동물모양의 토기들은 다른 상형 토기들에 비해 많은 수로 제작되었을 뿐더러, 오리모양의 토기는 대량으로 출토되는 예까지 있을 정도로 고대시대 토기의 한 형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오리형 토기는 옛 가야지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 토우의 일종으로 술잔 등의 용도로 추측되기도 하나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장식적인 성격이 강한 토기이다. 


  신라시대의 것으로 거의 완형에 가까운 토기이다. 오리형 몸통의 등 가운데에 급외반하는 구연부를 가지는 주입구가 붙어 있으며, 그 양쪽에는 날개가 달려있으며, 꼬리부분은 비스듬하게 잘라내어 주출구로 만들었다.

  머리는 앞으로 내밀고 있는데, 눈, 코, 머리를 표현하였다. 몸통 하위에는 굵은 횡침선을 2조 시문하였으며, 날개부분에는 반원문을 여러번 그었다. 몸통의 하위에는 파상문을 시문하였다.

  대는 팔자형으로 벌어졌으며, 대의 중위에는 2조의 돌대를 돌렸으며, 상, 하위에 장방형의 투창 3개를 서로 엇갈리게 뚫었다. 


입지름 : 4.8 cm / 높이 : 22.2 cm / 바닥지름 : 8.3 cm


  이러한 이형토기는 주로 장례의식에서 죽은 이와 함께 무덤에 묻는 것으로 이를 통해서 사람이 죽어서도 살았을때와 같은 생활을 한다는 믿음과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한다는 믿음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외형상 매우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는 경질토기(硬質土器)로 대부분 암수 한쌍이며 속은 비어있고, 등에는 주입구가 있다. 또한 꼬리부분에는 출수구가 있으며 불룩한 배 아래부분에 굽다리접시와 같은 굽다리가 부착되어 있다.

 이 토기는 토기 중에서도  길이41 cm  높이 : 33 cm 대형토기로 가야(伽耶)지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토기는 큰 깃과 귀와 입 등이 표현되었다. 깃의 일부와 한쪽 귀는 수지복원되었다.

  토기 속은 비어 있으며 등에는 주입구(注入口)가 있고. 꼬리부분에 출수구(出水口)가 있다.  따라서  이 토기는 제례 용구(祭禮用具)이거나 물과 관계 있는 의식 용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 16.5 cm / 높이 : 15.5 cm 가야(伽耶)
대구광역시(大邱廣域市) 달성군(達城郡)

한 쌍의 오리 모양 토기이다. 주둥이가 사실적으로 묘사된 소박한 형태를 하고 있다. 네 개의 사각 투창(四角透窓)이 길게 뚫려진 받침(臺脚) 위에 오리가 서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등에는 원통형으로 솟아오른 구멍이 있어 오리의 몸체에 액체를 부을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원통의 입구 끝은 톱날처럼 처리되고 있다.

 오리는 약간 숙이고 있으며 오리의 독특한 부리가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눈과 콧구멍까지도 투박하지만 잘 나타나 있다. 목에는 둥근 목걸이처럼 띠를 두르고 있다. 띠를 보면 이 토기는 집에서 기르던 오리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날개를 따로 만들어 등에 붙였다. 꼬리는 살짝 치켜들었는데 끝이 잘려져 나갔다. 전체적으로 귀엽고 통통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한쌍의 오리모양 토기이며, 오리형 토기는 옛 가야지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 토우의 일종으로 술잔 등의 용도로 추측되기도 하나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장식적인 성격이 강한 토기이다.


전체높이 : 20 cm / 전체길이 : 23.2 cm / 바닥지름 : 10 cm 가야(伽耶)


거의 완형. 오리형 몸통의 등 가운데에 원통형의 주입구가 붙어 있으며, 그 양쪽에는 날개가 달려있으며, 꼬리부분은 비스듬하게 잘라내어 주출구로 만들었다. 머리는 앞으로 내밀어 숙이고 있는데, 눈, 코, 귀를 표현하였다.

몸통은 반원문을 시문하였으며, 날개부분에는 평행문을 그었다. 대는 사방향으로 벌어졌으며, 대의 상단에는 2조의 돌대를 돌렸으며, 바로 아래에 장방형의 투창을 5개 뚫었으며, 대 단은 둥글게 처리하였다.

태토(胎土)는 사립(砂粒)을 약간 포함하며 소성(燒成)은 양호하고 색조는 적갈색(赤褐色)을 띠고 있다. 두부(頭部)는 정면을 바라다 보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전형적인 압형토기(鴨形土器)이다. 가느다란 짧은 목으로부터 원만하고 풍성한 몸체부를 형성하였다. 등 위에는 토기(土器) 구연(口緣)과 같이 약간 올라와 있는데 구멍이 뚫려 있다.

길이(길이) : 24 cm / 높이(높이) : 12 cm


토기(土器) 구연(口緣)과 같이 약간 올라와 있는데 구멍이 뚫려 있다.
꼬리부에도 마찬가지로 구멍이 뚫려 있다. 꼬리부에도 마찬가지로 구멍이 뚫려있다. 다리부분은 고배(高杯)와 마찬가지로 둥그런 대부(臺部)를 이루어 안정감을 더해주고 있다. 기면(器面)은 전체를 마연하였다.

 오리모양 토기(압형토기鴨形土器)에 대해서..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오리는 3세기경에 이르러 낙동강 동안 지역에서 토기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오리모양토기의 제작은 낙동강유역의 새 숭배사상과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민간신앙이 무덤에 오리모양토기를 부장하게 된 주요인인 듯하다.
오리모양토기는 대체로 삼국시대에 유행했으며 주로 무덤에서 출토되어 껴묻거리(副葬品)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출토지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여 신라지역과 가야지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으며 대부분 암수 한쌍으로 출토되고 있다.

토우(土偶)는 가야(伽倻)·신라(新羅)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가야는 계속 발전하지 못하였고 신라에서는 후대(後代)까지 각종의 토우가 제작 발전하였다. 압형토기(鴨形土器)도 토우의 한 형식으로 파악되어 지는데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압형(鴨形)의 의장(意匠)에 중점을 둔 신조(神鳥)로서의 장송의례적(葬送儀禮的)인 공헌토기(供獻土器)이다.

이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변진전(弁辰傳)의 "以大鳥羽送死 其意欲使死者飛揚(이대조우송사 기의욕사사자비양"이라는 사료(史料)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곧, 묻힌 자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인도해 가는 교통수단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따라서 이러한 토기(土器)의 제작과 부장(副葬)은 그 시대의 사상(思想) 및 내세관(來世觀)을 고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물오리나 새는 악령을 방지하고 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한다는 믿음이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있어 왔다. 또한 홍수나 재해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의 새로 상징되기도 하고 과거급제를 나타내기도 한다.

출저: 문화재청 이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