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두룽이’의 한자 표기는 ‘독로’(瀆盧)인데 우리말의 ‘도랑’에 해당

吾心竹--오심죽-- 2010. 2. 2. 13:41

'다우렁'은 서로 상생하며 모두를 위한다라는 제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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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  (2008-12-22 12:03:45, Hit : 1062, Vote :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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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瀆盧國(독로국)
瀆盧國(독로국)

변한 12소국 가운데 하나.

지금의 부산 동래지역에 있던 소국이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변진조(弁辰條)에 "독로국은 왜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변진지역에서 가장 남단에 위치한 소국임을 알 수 있다. 정약용의 〈강역고〉 변진별고에서는 이를 동래로 보지 않고 거제도로 보기도 했으나 현재 동래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한편 〈삼국사기〉에 의하면 동래 지역에는 거칠산국(居柒山國)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독로국과 동일한 곳으로 보여진다. 일찍이 경주의 사로국에 복속된 것으로 추정되며, 거칠산군(居漆山郡)이 되었다가 경덕왕 때 동래군으로 이름을 고쳤다. 현재 동래에는 복천동 고분군과 함께 오륜대·연산동·반여동 등에 많은 가야고분군이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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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독로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의 변진별고(弁辰別考)에서 경상남도 거제도(巨濟島)로 추정하였고, 이병도(李丙燾)는 부산광역시 동래(東萊) 지역으로 추정하였다.
거제설(巨濟說)에 따르면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거제는 신라 때인 677년(문무왕 17)에 상군(裳郡)이라 하였는데, ‘상(裳)’은 우리말로 ‘두르기’이고 독로와 음이 비슷하므로 거제로 추정하였다. 상군은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거제군으로 고쳤다.

동래설(東萊說)에 따르면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에 독로국의 위치가 왜(倭)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부산 금정구(金井區)에 있는 널무덤[土壙墓]과 동래 패총(東萊貝塚:사적 192) 등 발견된 유적으로 보아 지금의 동래로 추정된다.
전기 가야연맹의 한 성읍국가인 독로국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동래 지방은 신라에 병합되면서 거칠산군이었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 동래군(東萊郡)이 되었다.
변한 12국 가운데 동래의 독로국을 비롯해 김해의 구야국(狗邪國), 고성의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등에서는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 부족국가들은 철을 생산하여 낙랑군, 대방군, 왜 등지로 수출하기도 하였다.

*이병도에 의해 동래로 비정?  확 깨는군요.


저번에 가야소국의 지도를 보니, 독로국이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안라국이 지금 마산의 서쪽 함안이니까...

독로국은 함안의 서쪽 부근이던가..함안의 남쪽으로 생각되더군요.

함안의 남쪽을 보니 거제도가 눈에 띄어, 瀆盧國(독로국)이 거제도에 있었을거라 짐작을 했습니다.

나중에, 신채호의 책을 보니..그는 이 瀆盧國(독로국)을 거론하면서..
瀆盧= 도롱이, 라 하면서 쭉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정약용도 거제도로 비정했다는 걸 언급했더군요.

盧= 羅라로 발음되면서, 那와 통한다했습니다.

그렇다면, 瀆盧國(독로국)= 多羅國(다라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多羅國(다라국)은 일본서기 흠명기의 임나10국에 포함된 나라이죠.


日本書紀 欽明天皇紀 23年
二三年 春 正月 新羅打滅任那官家 一本云 二一年任那滅焉 總言任那 別言加羅國 安羅國 斯二岐國 多羅國 卒麻國 高嵯國 子他國 散半下國 乞飡國 稔禮國

흠명천황(欽明天皇) 23년(A.D 562년)
봄 정월 신라는 임나의 관가를 쳐서 멸망시켰다. 一本이 말하길, 흠명천황 21년(A.D 560년)에 임나가 망하였다고 한다. 통틀어 임나라고 하고, 별도로 가라국, 안라국, 사이기국, 다라국, 졸마국, 고차국, 자타국, 산반하국, 걸손국, 임례국을 말한다.

라디오 (2008-12-22 21:39:54)   
여자들이 집에서 막 입는 통치마를 의 미하는 `두룽치마`도 두루치기라고 했다
라디오 (2008-12-22 21:40:23)   
두룽치마, 여자들이 집에서 입는 막치마의 한 종류
라디오 (2008-12-22 21:40:40)   

거제도(巨濟島)는 남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이 섬 이름이 한 때는 ‘상군’(裳郡)이라 불렸다. 뜻으로 본다면 ‘치마’인 셈인데, 이 섬을 ‘치마’와 연관지어 부를 만한 연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최남선의 <동경통지>에서는 거제를 상군으로 부른 연유를 두고 한 구절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치마’를 뜻하는 속어로 ‘두룽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두룽이’라는 말을 문헌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비가 올 때 입는 ‘도롱이’는 짚이나 띠로 만들어 허리에 매어 입었으므로 ‘치마’를 뜻하는 ‘두룽이’가 속어로 쓰였다는 이야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두룽이’의 한자 표기는 ‘독로’(瀆盧)인데 우리말의 ‘도랑’에 해당하는 말이다. ‘도랑’이나 ‘두룽이’, 그리고 ‘도롱이’는 모두 ‘두르다’ 또는 ‘돌다’에서 파생된 명사다. 우리말에서 ‘두르다’에서 나온 명사는 흔치 않지만 ‘돌다’에서 파생된 말은 비교적 자주 쓰인다. 예를 들어 ‘도리’는 ‘둘레’를 뜻할 때와 ‘주기’를 뜻할 때 쓰인다. ‘도리 기둥’이나 ‘두리 기둥’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돌려 얹히는 나무를 뜻한다.

거제의 땅이름이 치마나 비옷을 뜻하는 ‘두룽이’ 또는 ‘도롱이’였던 까닭은 섬 주위로 물길이 돌아들기 때문이었다. 외형상으로 전혀 무관해 보이는 ‘독로’, ‘상군’, ‘거제’가 모두 섬의 지형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러한 말이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도 고유어와 한자어의 대응 관계가 성립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라디오 (2008-12-22 21:43:35)   
막차를 놓칠 적마다 달디단 바다를 밟고 섰는 나를 본다.
푸른 대문이 안보일 적마다 두룽치마 입은 마고할미를 기다리는 나를 본다.
야야, 와 여서 우노, 어데 갈라 하노 ...

裳 치마 상
㉠치마 ㉡아랫도리 옷 ㉢바지 따위 ㉣산뜻한 모양 ㉤보통(普通)
라디오 (2008-12-22 21:52:30)   
폐왕성…신라시대 축조된 가장 오래된 성
거제도에는 성의 박물관이라 할만큼 27개의 많은 성이 있으며 폐왕성은 고려시대 축성된 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2004년 10월 폐왕성 복원 사업에 따른 발굴(시굴)조사 결과 신라시대인 서기 6-7백년 사이에 축성된 거제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밝혀졌다.
삼국사기 지리지 등에 의하면 677년 신라 문무왕 때 상군(裳郡)이 설치되고 757년 신라 경덕왕 때 거제군이라 칭하면서 거제군에는 아주현, 명진현, 남수현(송변현, 지금의 다대) 등 3개의 속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중심지이며 치소지인 거제군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남았으나 폐왕성이 신라시대 축성된 거제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밝혀짐에 따라 신라시대 상군과 거제군의 치소지가 있었던 곳은 폐왕성 임이 분명해 지고 있다.
성의 축조위치에 있어 조선시대는 평지성을 축조하였지만 고려시대까지는 산지성을 축조하여 치소지가 산에 있었으며 폐왕성은 치소지가 있었던 중심 성으로 산성에서 거제지역을 다스릴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으나 중요 인사는 산성에서 근무하고 보조 인력은 평지인 거림리 일대에서 근무하였다고 볼 수 있다.
■거림 일대 상사리 기와 발견…‘거제 상군 치소지’ 확실
둔덕면 거림리 일대는 중요한 유적이 많으며 고려시대 기성현지가 있었던 곳으로 1996년 거림리 경지정리로 인한 기성현지 발굴 조사 시 관청의 추춧돌 기와 등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특히 상사리(裳四里)라는 글씨가 새겨진 명문 기와편이 발굴되었다.
거제도는 신라 문무왕 때 상군(裳郡)이라 불렀으며 경덕왕 때 거제군으로 바뀌었는데 거림리에서 발굴된 상사리(裳四里)가 새겨진 기와편은 상사리 사람들이 기와를 제작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기와의 제작과정과 운반거리를 감안하면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 상사리가 거림 인근에 위치한 마을이며 상군 관할의 여러 마을 중 하나로 ‘상군의 치소지가 거림’이라고 시사 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독로국…신라 문무왕 때 칭한 거제의 명칭
독로국과 상군과의 관계에 대하여 상사리 기와가 발견된 것은 거제가 독로국임을 확신한다.
독로와 동래가 음이 비슷하여 독로국이 동래일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동래(동녘東, 쑥萊)는 삼국사기에 거칠산군(居柒山郡)에서 동래군(東萊郡)으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쑥은 거친 곳에 사는 풀로 동쪽에 있는 래산국(萊山國)을 동래(東萊)로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신라가 예전에 장산국 혹은 래산국(萊山國)이라 일컫는 소국을 정복하여 거칠산군(居柒山郡)을 설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동래가 독로국이라는 설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리고 동래에는 복천동 고분 등 고분군이 많이 있으나 거제에는 고분군이 없는데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하여는 서기 250년경에는 무덤이 봉토(솟아있는 무덤)가 아니며 우리나라에서 2-3세기경의 고분군은 발굴되고 있지 않고 있어 동래의 고분군은 삼한시대 이후인 신라∼가야시대의 고분군이다.
그리고 조선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와 장지연(張志淵:1864∼1921) 선생의 아방강역고를 증보한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에서 거제도를 독로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처음 설치한 상군(裳郡)의 상은 치마 상(裳)으로 바다가 섬을 둘러싸고 있다는 뜻으로 두루기와 그 소리가 같으며 신라시대 이두(吏讀)를 이독으로 읽지 않고 이두로 읽는 것과 같이 독로국을 두루국 또는 도로국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독(吏讀)을 이두로 읽듯이 독로(瀆盧)도 「도로」또는「두루」로 읽어야 하며 두루기 뜻의 치마상이 상군이며 상군은 두루국(瀆盧國)을 신라 문무왕 때 칭한 거제의 명칭인 것이다.
■폐왕성 7∼8세기 축조…거제역사 뿌리 간직한 곳
앞서 밝힌 둔덕면 거림리에서 발견된 상사리(裳四里) 명문 기와 파편은 신라 문무왕(文武王:626∼681) 상군 시대의 치소지가 거림리 일대로 거림리에 속한 폐왕성과 연계됨을 알 수 있다.
문무왕 이전의 치소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치소지 선정 시 앞의 성을 이용하거나 중심지역을 택하였으며 폐왕성은 7-8세기 축성되었다.
두루국(瀆盧國)과 상군(裳郡)의 치소지라고 볼 수 있는 폐왕성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우리나라 성곽연구의 교과서적인 성이라고 할 수 있다.
둔덕은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거제도의 치소지 이며 행정의 중심지로서 폐왕성과 거림리 일대는 거제의 역사뿌리를 간직한 곳이며 고려 의종이 3년간 머문 역사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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