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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사진첩...전우야 잘자라

吾心竹--오심죽-- 2009. 6. 24. 12:32

전우야 잘자라 한국전쟁




전우야 잘자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주는.
노들강변 언덕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내 가슴에 꽃같이 별같이

 

 

아프고 치열했던 ‘6·25의 기억’ 한국전쟁 

 

맥아더 장군, 전장 순시1950년 전장을 순시하는 맥아더 사령관(오른쪽)과 리지웨이 장군(오른쪽 두번째).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6.25 전쟁 혼란중에도 발빠른 벤처기업가(?)가 태극기와 유엔기를 팔고 있다. 1950년 10월 28일 서울모습.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 10월 28일 서울의 폐허속에 문을 연 구두수선점. 피난에서 돌아온 구두수선공이 이전에 자신의 가게였던 자리에 다시 문을 열고 군화를 수선하러온 국군장병을 첫 손님으로 맞았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폐허로 변한 서울 거리에서 부녀자들이 건물잔해속에서 땔감이나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뒤편으로 중앙청 건물이 보인다. 1950. 11.1일 서울모습.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11월 2일. 전쟁고아들이 트럭으로 실려와 서울의 한 고아원에 내리기 직전의 모습.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11월 2일. 고아원에 방금 도착한 아이들이 통조림으로 첫 식사를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 11월 9일. 미 보병 2사단이 발견한 한국 화폐 원판을 한 미군이 들고 있다. 뒤에는 지폐다발이 보인다. 사진에 뒷면의 설명에는 이 원판과 지폐가 진본인지 위조된 것인지에 관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 11월 12일.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원생들이 수녀들의 도움으로 뜨개질을 배우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12월 3일.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피난민의 행렬.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12월 3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엄동설한에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려 평양의 대동강을 건너 피난을 떠나는 북한 주민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0년 12월 9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38선을 넘어 남하하는 북한 주민 가족을 미군 헌병이 검문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국군 신병으로 전선으로 떠나는 아들을 전송하는 어머니의 모습. 한 바가지의 물로 아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표정과 이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매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1950. 12. 19. 대구역앞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한국전 당시 젊은 모습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으로 재직하던 1951년의 모습.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4일. 1.4. 후퇴 당시 남하하는 피난민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5일. 1.4 후퇴 당시 서울을 떠나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의 행렬.

빨래하는 아낙들1951년 1월 8일. 부서진 러시아제 T-34 탱크 옆에서 빨래하고 있는 아낙네들.

 

아버지 업고 한강을 건너다1951년 1월 14일. 늙은 아버지를 업고 서울 한강을 건너 피난가는 주민 모습.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14일. 부산의 포로수용소에서 한 미군 병사가 인민군 소년병 포로와 나란히 서 있다. 송종태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12살로 서울에서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14일. 부산의 포로수용소에 방금 도착한 중공군 포로의 모습.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16일. 부산 포로수용소의 여군 포로들. 중공군인지 북한군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27일. 지게에 가재도구와 함께 아내까지 태운 중년의 가장이 피난행렬에서 미군의 요청으로 돌아서서 포즈를 취했다. 피난의 와중 웃는 표정에서 낙천성이 느껴진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1월 31일 미 보병 25사단 소속의 한 장교가 이동수라는 이름의 통역관의 도움을 받아 주민들에게 대피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설명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무심하기 그지없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한 어머니가 서울 남쪽의 한 마을에서 지뢰 파편에 다쳐 우는 아들을 데리고 미군을 뒤따라가 가고 있다. 1951.2.4.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상여가 지나가는 광경을 유엔군 소속 벨기에 병사들이 신기한 듯이 지켜보고 있다. 1951.2.23. 경북 왜관.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2월 26일. 전장에서 체포된 부상병 포로들이 트럭으로 부산 인근의 병원에 방금 도착해 치료를 기다리는 모습.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2월 26일. 전장에서 체포된 부상병 포로들이 트럭으로 부산 인근의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기다리는 모습.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2월 26일. 전장에서 부상해 체포된 포로들이 트럭으로 부산 인근의 병원에 방금 도착해 치료를 기다리는 모습.
“Thanks, Korean boys”1951년 3월 21일 80일간 적군에 포로로 잡혀 있다 구출된 미군 병사 3명이 자신들을 위해 전령 역할을 해준 한국 소년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경례를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1951년 3월 22일. 3∼6세된 전쟁고아들이 부산의 한 고아원에서 보모들의 보살핌 속에 잠자리에 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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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한국전쟁 발발 59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돼 온 6.25 관련 흑백사진 47점이 공개됐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은 1950년 10월 서울의 폐허 속에 문을 연 구두 수선점, 태극기와 유엔기를 파는 당시 벤처 기업(?), 전장으로 떠나는 신병들, 피난민과 전쟁고아들, 전쟁터의 상여행렬 등 한국전쟁 당시의 생활상과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 중 51년 2월 경북 왜관에서 상여가 지나가는 광경을 유엔군 소속 벨기에 병사들이 신기한 듯이 지켜보는 사진과 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엄동설한에 바지를 걷어올리고 대동강을 건너는 북한주민들의 장면을 담은 사진 등은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희귀사진으로 알려졌다.

한국전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으로 재직하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젊은 모습과 70년대 초 국방장관을 지낸 유재흥 소장(육군 참모차장)의 모습도 앵글에 잡혀있다.

이밖에 전장에서 붙잡힌 부상 포로들이 부산 인근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기다리는 사진이나 여군 포로들이 모여있는 장면을 담은 사진도 눈길을 끈다. 

 



6.25전쟁 기록앨범



▲1950. 10. 1. 38선을 돌파하고 북진하는 국군용사들


1950. 10. 1. 38선을돌파하고북진하는국군용사들


▲1950. 10. 1. 38선을 돌파하고 북진하는 유엔군



북진하는 국군용사들



▲국군 환영 군중대회 (함흥)


▲1950. 10. 10. 함흥 부근의 한 동굴에서

공산군에 확살된 300여 명의 시신을 꺼내고 있다.




▲1950. 10. 13. 함흥. 우물에서 공산군에 학살된 시신을 건져 올리고 있다


▲평양북방에 낙하하는 공수부대


▲평양북방에 낙하하는 공수부대


▲평양 비행장에내린 맥아더장군과 워커장군(1950.10.20 )


▲ 환영 군중대회 (평양)


▲압록강에 도달한 국군용사 (
1950.11.20.)


1950.11 인해전술로 공격하는 중공군 40군단


▲1950.11 인해전술로 공격하는 중공군 40군단


▲후퇴하는 미군들


▲후퇴하는 미군들


▲1950년 12월 3일 평양, 파괴된 대동강 철교에서
피란민들이 남하하고 있다.
(1953년도 푸리쳐상 수상 작품 )


남하하는 피난민들


▲ 1950. 12. 16. 흥남부두.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


▲ 1950. 12. 16. 흥남부두 수송선을 기다리는 피난민들


▲수송선을 기다리는 피난민들


피난
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피난민들


▲1950. 12. 23. 흥남부두, LST 함정에 가득 탄 피난민들.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이미지 출처 :무척산 블로그 
 
 
 
본문스크랩 6.25를 생각하며.... 한국전쟁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2. 북한군 포로.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2)>

NARA에서 발굴한 한국전쟁 사진들

 

박도(parkdo) 기자   

여기에 실린 사진들은 미국 메릴랜드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서 필자가 재발굴한 것들로 현지에서 보낸 것입니다...<필자 주>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야간 전투 후 주간 취침.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2. 금강철교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3)>

NARA에서 찾은 한국전쟁 사진들

박도(parkdo) 기자   

이 사진들은 미 메린랜드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NARA)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것을 필자가 가려 뽑아서 보냅니다. 날짜와 지역은 사진 뒷면에 있는 설명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고하여 필자가 다소 윤색하였습니다...<필자 주>















▲ 1950. 8. 3. 뙤약볕 속에 전선으로 가는 국군 행렬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남 진주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원문은 포로로 되어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2. 16. 흥남부두.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
ⓒ2004 미국국립문서보관기록소



















▲ 1950. 12. 18. 흥남에서 묵호(동해)로 후퇴한 후 수송선에서 내리는 병사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텅 빈 흥남부두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불타는 흥남항
ⓒ2004 박도



















▲ 1950. 12. 26. 전차도 후퇴대열에. 흥남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고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2. 27.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 3. 1·4 후퇴를 앞두고 불타고 있는 서울 시가지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4)>

NARA에서 찾은 한국전쟁 사진들
박도(parkdo) 기자   

이 사진들은 미 메릴랜드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것 중에서 필자가 가려 뽑아 보냅니다. 날짜와 지역은 사진 뒷면에 있는 설명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다소 윤색하였습니다. <필자 주>















▲ 1951. 1. 5. 1.4 후퇴 피난민 행렬

ⓒ2004 박도















▲ 1951. 1. 5.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2004 박도














▲ 1951. 1.4. 한강나루터에서 건너야 할 강을 바라보는 피난민 아이들
ⓒ2004 박도














▲ 1951. 1. 4. 한강 임시 부교
ⓒ2004 박도














▲ 1950. 12. 29. 양평 , 생포된 포로들
ⓒ2004 박도














▲ 1950. 11. 29. 최전방의 간호사들
ⓒ2004 박도














▲ 1951. 1. 6.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2004 박도














▲ 1951. 1. 5. 한미 합작의 한국군 병사 장비. 신발, 겉옷 , 모자 : 한국제. 코트, 소총, 탄환 : 미제
ⓒ2004 박도














▲ 1951. 1. 5.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미군 부대에 몰려온 한국의 노무자들
ⓒ2004 박도








▲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5)>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서 찾은 한국전쟁 사진들
박도(parkdo) 기자   
이 사진들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NARA)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것 중에서 필자가 가려 뽑아 보냅니다. 날짜와 지역은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다소 윤색하였습니다.

이 사진들을 시대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편집해서 보내지 못한 것은 상자에 담긴 사진들이 제2차세계대전 중의 유럽, 일본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등의 사진이 뒤죽박죽돼 있고, 필자도 그날그날 가려 뽑아서 송고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것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필자 주>

















▲ 1950. 12. 1.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를 등록하려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1. 16.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교육을 받고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1. 4.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PRI(사격술 예비훈련)을 받고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5.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한 북한의 어느 지역(평산)에서 주민들이 지역 대표와 치안대장을 뽑고 있다. 그들 대표는 무슨 색깔의 완장을 찼을까?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 남하하고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22. 전쟁에는 2등이 없다. 포로가 되는 순간부터 치욕이다. 미군들이 생포된 포로의 온 몸을 수색하고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20. 미군이 인민군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수색하고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17. 인천.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후 함포사격 포화에 무너지고 그을린 인천시가지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18.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전함에서 병사들이 하선하고 있다.

ⓒ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5. 28. 38선 부근 6마일 남쪽 마을에서 탱크의 포화소리에 귀를 막는 소년들. 이들의 누더기 바지 차림이 그 무렵 소년들의 대표적 옷차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