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백제-신라 도공 합동으로 토기제작 규명 마무리
吾心竹--오심죽--
2009. 4. 9. 19:35
백제-신라 도공 합동으로 토기제작 규명 마무리
영동리고분군 발굴결과 토론회 1일 오후 2시 현장서
기사입력 2009-04-01 10:27 고선주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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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리고분군은 원래 8기 이상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었으나 대부분 파괴되고 3기의 고분만 남아 있는 상태로 고분 내부에서는 옹관묘 26기, 석실묘 8기, 석곽묘 6기 등 40여기의 매장주체부가 이미 확인돼 역사학계 관심을 모아왔다.
특히 영동리고분 재지계토기, 백제계토기, 신라계토기, 가야계토기가 출토되어 당시의 왕성한 대외활동을 짐작할 수 있는 가운데 백제토기와 신라토기가 동일한 가마에서 제작된 사실이 밝혀져 주목되고 있다.
이 고분군의 토기는 뚜껑(신라토기)과 몸체(백제토기)로 결합해 출토됐는데, 발굴당시에는 신라와 백제로부터 뚜껑과 몸체를 별도로 수입해 결합시킨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발굴결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유물을 정밀하게 관찰한 결과, 신라토기 내부에서 백제 삼족기를 얹어 구웠던 흔적이 확인됐고 뚜껑과 몸체를 결합해 구울 때 서로 들러붙지 않도록 하던 이기재의 흔적도 정확히 일치했다.
이처럼 백제 도공과 신라 도공이 협업으로 토기를 제작한 유물은 처음 확인되는 사례로 영산강유역 고대사회의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가 될 전망이다.
또 인골과 함께 청동제 허리띠장식과 관모가 출토됐는데 이 유물은 백제의 귀족이나 관료임을 시사하는 유물이다. 이는 영동리고분군의 피장자는 백제의 귀족이 된 재지세력의 무덤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영동리고분군은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원래의 모습으로 복토될 예정으로 고분이 복토되면 이후에는 외부의 봉분만 볼 수 있을 뿐 내부의 다양한 무덤들은 관찰할 수 없게 된다.
유적조사단은 발굴조사가 재정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열악한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영동리고분군 전체를 스캐닝하여 디지털 3D로 제작함으로써 고분의 원형을 복원하고, 또한 언제든지 고분 내부를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영동리고분군은 3세기의 옹관고분 묘역에 5세기 말~6세기 전반의 초기석실묘가 축조되고 잇따라 백제석실묘와 석곽묘가 7세기까지 축조되는 등 400년 이상 조성된 고분군으로 2005년부터 문화재청과 나주시의 지원을 받아 발굴조사를 벌여왔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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